송파는 조선후기 전국 15대 향시중의 하나로 서울, 경기 일원의 중요한 상역지였다.

 

한강을 따라 강원도까지 배가 내왕하는 나루터가 있었고 마행상, 보부상들이 전국에서 송파장으로 모여들어 270여호의 객주집이 성업 성시를 이루었다.

 

따라서 본 장날뿐만 아니라 이전에 모여들고 실어나가는 훗일까지 사흘씩 붐비며 서울로 공급되는 경기미, 숯 연초, 소 채소, 곡식 등이 모두 송파나루터를 건넜으며 심지어는 "임금님께 진상하는 꿀단지도 송파를 거친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서울의 상업적 관문이었다.

이리하여 되쟁이, 말쟁이, 임방꾼(부두작업부), 잡심부름꾼, 주막, 운송점(창고 및 주문처), 선원, 연초가공, 우시장 등 갖가지 직업과 거부상들이 많아 그들이 추렴하는 기부금으로 대소 명절과 장날에 놀이판을 벌림으로써 송파장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장이 전에 비해 성시를 이루지 못한듯 하면 백중 난장을 7일까지 늘려 판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상인들의 추렴으로 보양(심부름꾼)을 띠워 명연회자들을 불러들여 줄타고, 씨름붙이고, 소리하고, 산대놀이판을 벌림으로서 장꾼들이 몰려 장이 훨씬 성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송파백중놀이는 밀양백중놀이 등과 같은 농민들에 의한 농촌형 백중놀이와는 달리 도시형(상업지) 놀이로써 직업적인 놀이패 즉, 사당패·소리패·탈꾼패들을 불러 들여 공연형태를 갖춘 놀이로써 1925년 한강 대홍수로 송파지역이 모래사장으로 변해버린 이후 70여년만에 송파백중놀이를 재현하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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